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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소믈리에에 관하여.

 

딱히 Wine story쪽으로 보내기엔 너무 많은 나의 주관이 들어있고,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기 때문에 잡담 같은 느낌으로 받아주기를 바란다.

 

9년. 

 

필자가 와인에 빠진 시간이다. 생각보다 짧은가?

필자는 아직 30이 아니다. 

법의 라인이 허용하는 스타트 라인부터 모든것을 쏟아서 와인과 함께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나보다 더 많은 삶을 쏟은 선배님들도 계시기에 객관적인 글이 아닌 개인만의 생각으로 적어본다.

내가 하는 말이 소믈리에 전체를 대표해서 발언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물론 이쪽에 대선배님들도 많고, 나보다 뛰어난 분들도 많이 있고, 나는 그들은 존경한다. 그리고 나는 소믈리에들이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 너무 좋다. 

나에게 처음으로 체계적인 와인의 공부법을 알려주고, 더 많은 도전의 과제를 보여준 스승님은 아직도 만나고 있고, 항상 감사드리고 있다.

(최근 반년 정도 필자가 다른일로 빠져있었기에 말씀도 못드리고 바다 건너와있다. 조만간 돌아간다면 꽤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다.)

 

Uncorked라는 영화에서도 보이듯이 소믈리에는 "소말리아? 소몰이?" 등 우스갯 농담이겠지만,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단어이고, 생소한 직업이다.

아마 와인에 대한 전문가라는 설명을 곁들이지 않으면 다시 끔 그게 뭐하는 직업이냐고 물을 것이다.

 

특히나 한국은 와인 산업이 발전하고, 와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긴했지만, 기본적으로 식사에 와인을 곁들이는 문화가 아니기에 와인을 접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적이다.

그렇기에 소믈리에라는 것이 생소할 수 밖에.

 

소믈리에라는 직업은 낭만적이면서 낭만적이지 않다.

남들이 보기에 소믈리에라는 직업은 잘 다려진 정장, 깔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 격식있는 태도와 매너, 단어의 선택, 능숙하게 와인을 다루는 솜씨까지 테이블 앉아서 볼 수 있는 와인의 기교를 모두 보여주는 직업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소믈리에가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새로 와인 업계에 발을 들여놓는 후배들을 보고 있으면 좋으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와인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젊고 파릇파릇한 나이에 와인을 좋아해주는 것이 정말 좋다.

하지만 그 이면에 가려진 모습을 모른채 무작정 와인 업계에 발을 담그게 된 것은 매우 안타깝다.

 

지금 필자는 다른 곳에 있지만, 한국에 있는 파인다이닝에서 일할 적에 생각보다 소믈리에가 된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아침9시에 출근해서 새벽 1시까지 일하는 삶이 상상이 가는가?

물론 다른날 풀로 쉬게 해주기도 했는데 적어도 그게 루틴이었다.

 

보통 파인다이닝 런치 시간은 11시에 스타트해서 15시가 되면 Break time이 되고, 18시부터 23시까지가 디너 타임이다.

물론 저것만 보면 굉장히 이상적인 근무다. 많아봐야 9시간 근무하는거 아니야? 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저 생각이 든다면 딱, 손님의 관점이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백조의 대가리와 상반신이 아닌, 물 아래에서 열심히 발을 놀리는 모습을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출근해서 유리창 닦고, 화장실 닦고, 지문/물자국 없이 알코올로 닦고 화장실에 놓인 비품의 라인을 맞추고, 아로아 오일 켜고, 그날 예약된 상황에 맞춰서 테이블 셋팅을 바꾸고, 테이블보를 펼치고, 전날 닦아놓은 식기를 다시 점검하고, 잔 셋팅하고, 캔들 셋팅하고, 잔 셋팅하고, 바닥에 엎드려서 손걸레로 일일이 줄 눈에 낀 먼지도 제거하고, 문 손잡이에 생긴 지문도 닦고, 엘레베이터 버튼도 닦고, 매트도 쓸어내고 등등

이걸 하고, 아침식사 대신 손님용 빵으로 구워진 빵의 귀퉁이를 먹는다.

 

이게 런치 준비다. 이걸 출근해서 11시 전까지 마무리하고, 11시가 되기 전에 본인의 머리셋팅, 옷매무새를 다듬고 손님을 대기한다.

그리고 열심히 런치에서 구른다.

 

사실 앞서 말했듯이, 런치는 와인이 잘 안나간다. 

그렇기에 소믈리에로 들어와도 와인만 잡는것이 아니라 "와인을 다루고, 와인에 지식이 있는" 홀직원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한국에서, 소믈리에게 와인만 다룰 것이라고 착각하는 후배들이 있으면 절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 해 줄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소믈리에로 들어와도 경력도 없고 경력이 있다고 해도 일하는 업장을 바꾸면 0년차부터 다시 시작하는 셈이니 결코, 매니저가 입원해서 공석이 생기지 않는 한, 바로 와인을 잡을 수 도 없을 것이다.

 

소믈리에가 하는 일은 와인만이 아니다. 물론 메인은 와인이다. 하지만 들어오면 먼저 업장이 굴러가는 패턴을 익히고, 익숙해지고, 물에 대한 이해를 먼저 배운다. 물의 온도, 물의 상태, 각종 업장에서 다루는 미네랄 워터의 종류, 느낌, 설명을 모두 할 줄 알아야하고, 그 다음으로 업장에서 다루는 모든 음료-와인 이외에 파는 소프트드링크부터 알코올음료, 후식으로 나가는 커피까지-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야 비로소 와인을 배우고, 잡을 수 있다.

소믈리에는 업장에서 액체로 된 음료 모든 것을 다룬다고 봐야한다.

 

뭐 어디서는 홀과 주방이 따로 논다, 서로 사이가 안좋다 는 말이 있는데 그렇게 되면 레스토랑이 굴러갈 수 없다. 

좋은 레스토랑은 홀과 주방의 사이가 좋아야한다.

필자는 일을 하면서 주방인원에 관심을 많이 가졌고, 주방 일이 굴러가는 것도 배웠다.

왜냐고?

그렇지 않으면 손님에게 음식을 설명할 수도, 왜 이 와인과 매칭이 되는지도 설명할 수가 없다.

소믈리에는 그런 역할이다.

음료, 음식, 레스토랑 전반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있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홀직원이라고 해도 남들보다 배는 힘들다.

 

그런 점을 모르고 그냥 들어와서 "나는 와인 자격도 있는데 왜 와인을 안가르쳐주죠? 왜 와인을 못만지게 하는거죠?" 라고 생각하고 포기하는 후배는 없으면 좋을 것 같다.

실제로도 3년전에 소믈리에 자격을 가지고 지원해서 들어온 후배가 2개월차에 그만 두고 나간적이 있다.

이유는 와인을 안가르쳐줘서.

 

물론 와인에 대한 열정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누구보다 높겠지만, 글쎄다. 아무것도 모른채 와인을 따라주는 폼에 사로잡혀 소믈리에가 되길 원하는, 백조 대가리만 보고 백조를 따라하려는 멍청한 짓은 안하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꼰대같을 수도 있고, 나도 이런것을 겪을 때 생각보다 많이 꼰대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느끼기엔, 그때 배운 모든 것들이 내가 손님에게 완벽한 서비스를 하고, 손님이 한 끼의 식사에 만족감을 느끼도록 서비스하는데 있어서, 그리고 내가 Somm으로써 있는 동안 적절한 대처, 임기응변으로 쓸 수 있는 상황 모든것이 내가 그것들을 이해하고 있기에 가능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이다. 

 

세상에 쉬운게 어딨겠냐.

 

 

기회가 된다면, 실제 업장에서 일하는거 말고도 시험이나 다른 사항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