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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무엇을 준비할까? - 디캔터와 그 외

오랫만입니다.


저번 편에서 와인 오프너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번에는 꼭 필수는 아니지만, 부가적인 도구들을 알아보겠습니다.

제목을 '디캔터와 그 외'라고 했지만 디캔터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큰 도구들은 없습니다.



위 사진은 와인 푸어러Pourer라는 도구입니다.

와인 오픈 후 병 입구에 꽂아서 와인을 따를 때 병 목을 타고 흐르지 않도록 하는 도구 입니다.

보통 잔 단위로 파는 하우스 와인 바에서 주로 사용합니다. 

와인 마개도 있지만 보통은 와인 마개보다는 그냥 코르크를 다시 막아두곤 하죠.

두 개 모두 자주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보통 와인 사면 가끔 챙겨주곤 하는데 정말 안씁니다...



오늘 중요하게 알아야하는 것은 바로 디캔터Decanter입니다.

필수라면 필수적인 용품이긴한데, 모르시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아마도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이 디캔터에 대해 알고 계시다면 아마도 '신의 물방울'에서 접했으리라 생각합니다.



(神の雫 Episode 01 中)


바로 이 장면이지요.

여주인공인 미야비가 일하는 업장에서 주문이 들어온 "99 Domaine de la Romanee-Conti 'Richebourg'에 대해 클레임이 들어오자 같은 자리에 있던 주인공인 시즈쿠가 디캔터를 사용하는 모습입니다.



"와인 방울이 줄기를 이루며, 붉은 명주실처럼 똑바로 병 주둥이로 떨어져 들어간다.

와인을 안 이후로 처음 보는 신의 솜씨 같은 디캔팅이었다.


어린, 즉 만들어져 시간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와인은

이처럼 디캔터라는 병에 옮겨 마심으로써

그 잠재된 맛을 끌어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단순히 옮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하고 섬세한 와인일수록 

와인의 아로마와 맛과 그 복잡함을 놓치지 않기 위해, 

명주실을 뽑는 듯한 섬세함으로 작업을 해야한다."


시즈쿠가 디캔터를 사용하는 모습을 묘사해 놓은 부분입니다.

'신의 물방울'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으로 장면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와인을 마실 때 디캔터를 사용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디캔팅Decanting 작업이며 두번째는 에어레이션Airation 혹은 브리딩Breathing 작업입니다.

흔히들 브리딩Breathing이라고 많이 합니다.


대부분의 서적들에서는 디캔터를 사용하는 작업을 모두 디캔팅이라고 부르고있습니다만, 이 두 가지는 분명히 다른 작업입니다.


그렇다면 디캔팅과 브리딩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요?


와인이 오래된 경우에는 와인에 침전물이 생깁니다.

레드와인의 경우에는 탄닌 등이 뭉쳐서 검은 알갱이가 생기며, 화이트 와인의 경우에도 반투명한 알갱이인 주석산이 생깁니다.

이런 것들은 잔에 들어가서 와인과 함께 마시게되면 맛을 해치는 원인이되기 때문에 침전물로부터 와인을 분리해서 옮겨 따라 주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디캔팅Decanting입니다. 말 그대로 Decant(옮겨 따르다), 옮겨 따르는 작업입니다.

보통 디캔팅은 올드 빈티지의 레드 와인을 주로 합니다. 간혹 가다가 올드 빈티지 화이트 와인을 하는 경우도 있긴합니다만 꽤 드물죠.




보통 디캔팅 작업을 할 때에는 와인의 이동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위의 사진과 같이 눕혀지거나, 낮은 형태의 디캔터를 씁니다.

디캔팅하는 와인들은 대부분 오래된 와인이기에 조심스럽게 다뤄야합니다. 

가격도 가격이겠지만, 많이 늙은 와인이기 때문에 함부로 다루면 와인의 향이 날아가서 죽어버리는 경우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위의 사진은 파니에Panier라는 것입니다. 와인 전용 침대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보통 디캔팅을 필요로 하는 와인은 2-4일정도 세워두거나, 파니에에 눕혀서 침전물을 한 쪽으로 모아줍니다.


침전물이 한 쪽으로 모이면 와인 병이 흔들리지 않도록 와인의 캡슐 부분을 모두 제거하고, 코르크를 뽑습니다.

파니에에 누워진 와인의 경우엔 누워진 상태 그대로 코르크를 뽑습니다.


촛불을 켜고, 병 목을 비추면서 침전물이 병목에 다다를 때 까지 조심스럽게 천천히 디캔터로 옮겨 따릅니다.

대부분 와인 병이 암녹색이므로 빛이 없으면 내부를 보기 힘듭니다. 그래서 와인 병 내부를 비추어 보면서 침전물이 어디로 흐르는지 확인하면서 작업을 진행해야합니다.

손전등류를 사용해도 상관은 없지만 편하기도 하고 극적인 연출을 위해 대부분 촛불을 사용합니다.


침전물이 병 목까지 오게되면 침전물이 포함된 미량의 와인은 디캔터로 옮겨 따르지 않고 버리도록 합니다.


디캔팅이 생각보다 꽤 섬세함을 요구하는 어려운 작업입니다.

소믈리에 분들이 연습 많이하는 것 중 하나가 디캔팅입니다.



숨쉬게 한다라는 뜻의 브리딩Breathing은 디캔팅이 필요한 와인과 반대로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와인에서 주로 필요로 하는 작업입니다.

어린 와인을 오픈하게 되면 발효 과정에서 생겨난 유황 냄새(발냄새) 비슷한 환원취라고 부르는 잡냄새가 남아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충분한 병숙성이 되지 않아 잠재된 퍼포먼스를 전부 보여주지 못하거나, 탄닌이 매우 강해서 마시기 어려운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와인을 산소와 만나게 하여 잠재된 향을 깨우고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작업인 브리딩이 필요합니다.







보통 디캔터하면 떠오르는 보편적인 모양의 디캔터입니다. 브리딩에 주로 사용하고, 디캔팅에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브리딩을 하는 방법이 위에 언급했던 '신의 물방울'의 주인공인 시즈쿠가 하던 방법과 같습니다.

와인이 산소를 머금게 하는 것이죠. 즉 시즈쿠가 했던 작업은 디캔팅이 아닌 브리딩입니다.


브리딩이 필요한 와인은 적어도 중급 와인으로써 약 5년 이상 숙성이 가능한, 가격대로 보면 약 3만원대 ~ 5만원대 와인들이 속할 것 같습니다.

어린 중급 와인이더라도 피노 누아와 같이 섬세한 품종으로 빚어진 와인들은 브리딩을 하게되면 상처를 입어서 향이 꺾일 수도 있습니다.

반면 탄닌이 강하고 굳센 시라 품종이나, 말벡 품종으로 빚어진 와인들이 브리딩을 하게되면 꽤 부드럽게 변합니다.


브리딩이라고해서 무조건 가늘고 길게 뽑는 것이 아니라, 먼저 맛을 보고 어느정도 산소를 머금어야 좋을지 판단한 뒤에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아무리 어린 와인이라도 무턱대고 브리딩을 해버린다면 이 역시도 와인이 죽어버릴 수 있습니다.

얼마나 브리딩을 해야하는지는 어느정도 경험에서 우러나와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말로 설명하기 애매하군요.

그렇기에 소믈리에 분들이 존재합니다. 어려워마시고 맡겨주세요. 에헴.



간혹 가다가 "브리딩을 하게 되면 올드 빈티지 와인과 같은 퍼포먼스를 즐길 수 있나요?"라는 질문이 보입니다.

브리딩이 단시간에 산화를 시켜 와인을 늙게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에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되지만 답은 NO입니다.


브리딩으로 끌어낼 수 있는 퍼포먼스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2~3년정도 더 나이들게 할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은 힘듭니다.

20살인 사람이 아무리 나이든 척을 해도 30살인 사람에게서 나오는 연륜을 느끼기는 힘든 법 입니다.


브리딩을 하고싶은데 디캔터가 없다면 보틀 브리딩(Bottle Breathing)을 해도 됩니다.

보틀 브리딩은 말 그대로 병을 오픈한 채로, 혹은 한 잔 분량의 와인을 따라낸 뒤 다시 코르크를 막아두는 것으로 최소 몇 시간 ~ 하루 정도의 사전 작업이 필요합니다.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므로 미리 준비된 와인이 아닌 즉석에서 오픈하는 와인에는 조금 힘든 작업입니다.


보틀 브리딩 외에도 잔을 돌려서 마시는 스윌링(Swirling)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건 브리딩이라고 보기는 좀 어렵고 테이스팅 방법의 하나라고 보는게 더 옳겠지만, 원리는 같습니다.

잔을 돌려서 와인이 산소를 머금게 하는 것이죠. 스윌링은 와인의 변화를 가장 잘 느끼게 해주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첫 한 모금을 그냥 마신 뒤, 스윌링해서 다시 마시게 되면 꽤 다른 맛이 나거든요.

그렇다고 와인을 잔에 받으면 무조건 돌리지 마시고, 있는 그대로의 향을 맡고, 맛을 본 뒤 어느정도 돌려서 맛을 보시기 바랍니다.



추가적으로 디캔팅 중에 '더블 디캔팅(Double Decanting)'이라고 부르는 작업도 있습니다.

와인을 병 → 디캔터 → 병으로 옮겨 따르는 과정입니다.

숙성되어 침전물이 생겼지만 아직 힘이 넘치는, 숙성이 더 가능한 와인을 마실 때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병 → 디캔터 과정에서 침전물 제거와 산화를 동시에 진행하고, 다시 디캔터 → 병의 과정을 통해 더이상의 산화를 막아주는 것입니다.

더블 디캔팅은 디캔팅과 브리딩을 합쳐둔 작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디캔팅과 브리딩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같은 디캔터를 사용하더라도 전혀 다른 두가지. 이제는 혼동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담으로 저도 신의 물방울을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드라마도 봤구요.

와인이란 것이 상당히 주관적인 음료이기 때문에 각각 와인에 대한 표현이 작가의 감상이기 때문에 100% 동의 하지는 않습니다만

작가의 표현력은 상당히 풍부하고 재미있습니다. 여러분도 읽어보시면 와인에 대해 알아가는데 도움이 많이 될겁니다.





- Lawrence Kim




사진 출처 : Google Image Se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