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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주정강화 와인의 양조 - 쉐리 Sherry

오랫만에 뵙겠습니다.

유럽 갔다온 이후로 정신이 없었네요.


지난 번에 포르투갈의 주정강화 와인인 포트와 마데이라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제 이번에는 세계 3대 주정강화 와인의 마지막인 쉐리에 대해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카디스Cadiz 주에 헤레스 데 라 프론테라Jerez de la Frontera라는 곳이 있습니다.

줄여서 헤레스Jerez라고 불리는 이 곳은 영어로 쉐리Sherry라고 합니다.

바로 쉐리 와인의 어원이 된 곳입니다.


쉐리의 기원은 11세기 페키니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때의 쉐리는 그 지역에서 나는 화이트 와인을 일컫는 말로 지금의 쉐리 와인과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이 쉐리 와인이 유럽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말 영국에서 카디스를 공격한 후 쉐리와인 3,000드럼을 전리품으로 챙겨간 뒤부터입니다.

전리품으로 챙겨간 쉐리가 영국 귀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게되고, 이 시점으로부터 쉐리 와인이 유럽 지역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이후 유럽 시장에서의 수요가 많아진 쉐리 와인은 품질 개선을 거듭하였고 수출을 위해서 당시 영향력이 컸던 영국의 시장이 꼭 필요했습니다.

18세기 말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과 대륙 봉쇄령으로 인해 쉐리 와인은 영국에 수출할 길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스페인 입장에서는 다행히도 영국에 포트 와인을 수출하던 포르투갈이 대륙 봉쇄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침략을 당하고, 포르투갈의 와인 산업이 큰 피해를 입게됩니다.

이러한 기회를 등에 업고 전쟁이 끝난 뒤 스페인은 포르투갈의 포트 와인을 누르고 영국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습니다.


포트와 마데이라 역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 영국의 도움이 컸는데 쉐리 역시 영국의 도움이 컸습니다.

만약 영국이 없었더라면 아직도 주정강화 와인의 매력을 모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쉐리 와인의 양조는 팔로미노 피노Palomino Fino, 페드로 히메네즈Pedro Ximenez, 모스카텔Moscatel 의 3종류의 포도를 사용하도록 규정되어있습니다.

대부분의 쉐리는 팔로미노 품종으로 양조하며 나머지 두 품종인 페드로와 모스카텔의 경우 스위트 쉐리 등으로 양조하여 단 맛과 색을 더하기 위해 블렌딩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포도 수확 후 쉐리의 양조는 드라이 쉐리와 스위트 쉐리로 나뉘는데 두 쉐리의 양조 방식이 조금 다릅니다.





먼저 드라이 쉐리는 수확한 포도를 압착하는데 전통적으로는 이전에 설명한 라거라는 통을 이용하여 압착했으나, 최근에는 Vaslin(수평압착방식/좌측)과 Willmes(기압압착방식/우측) 등 기계를 사용하여 압착합니다.


압착 후 나온 과즙을 모스또Mosto라고 하며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발효를 실시합니다. 일부 와이너리에서는 특별한 모스또를 얻기 위해서 오크통 발효를 하기도 합니다.


일반적인 모스또는 색이 옅고, 산도가 낮고 향이 적은 것이 특징인데, 와인의 산도를 높이고 드라이 한 맛을 내며, 잡균의 번식을 막기 위해 압착할 때 예소Yeso라고 불리는 석고 혹은 주석산을 넣기도 합니다.





반면 스위트 쉐리의 경우에는 수확 후 바로 압착을 하지 않고 솔레오Soleo라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솔레오는 포도의 당도를 좀 더 농축시키기 위한 작업으로 파세라Pasera라고 하는 모래 땅 위에 에스파르토Esparto라고 하는 볏짚 깔개를 깔고, 수확한 포도를 널어서 햇볕에 말리는 과정입니다.


매일 방향을 바꿔서 모든 포도가 골고루 마를 수 있도록 하며, 이 과정에서 건강하지 못한 포도 송이를 골라내는 작업을 같이 진행합니다.

보통 7일에서 15일 정도 진행되며, 이 과정을 거치면서 포도 송이의 수분이 마르며 리터당 당 함량, 점도, 밀도, 유성 등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아로마와 풍미가 응축되고, 포도의 색이 어두운 색으로 변하게 됩니다.


솔레오가 끝나면 이 포도들은 압착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수분이 마른 포도들이므로 기계식으로 압착하는 대신 다른 방법을 사용합니다.

에스파르토를 깔고, 솔레오가 끝난 포도를 얹고, 다시 에스파르토를 깔고 포도를 얹는 과정을 반복하여 에스파르토 탑을 만든 뒤, 그것을 위에서 눌러 압착하는 방식입니다.

이 압착 방식에 대해서는 아래에 있는 동영상 링크를 참고하시면 훨씬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스위트 쉐리 양조 과정 : https://www.youtube.com/watch?v=Hbb_KCHuK3s)





이렇게 만들어진 모스또는 1차 발효를 마치고 오크통 숙성을 거치게되거나 병입이 됩니다.


오크통 숙성을 거치는 와인의 경우 오크통의 플로르Flor의 생성을 위해 20%정도 공간을 남기고 채워지고, 오크 숙성을 거치지 않고 바로 병입되는 쉐리는 비노 호벤Vino Joven이라는 이름을 달고 출하되게 됩니다.


플로르Flor는 오크통에 담겨진 와인의 표면에 생기는 효모 막으로, 포도에 붙어있던 헤레스의 자연 효모 등 4가지의 효모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이 플로르의 역할은 오크통에 있는 와인이 직접적으로 산소와 닿아 산화하는 것을 방지하며 빵 반죽을 비롯한 견과류 향등을 와인에 녹여내어 복합적인 아로마를 가지게 합니다.


오크통에 와인이 담기고 다음 해 1월 정도가 되면 와인들을 선별합니다.

오크통에 넣은 와인들은 이미 식초가 되어버린 와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 증류용으로 사용될 와인, 그리고 숙성 가능성이 있는 와인들로 구분됩니다.

이후 숙성 가능성이 있는 와인들은 또 다시 플로르가 생길 가능성이 있는 와인들과 그렇지 않은 와인으로 분류되며 본격적인 숙성에 들어갑니다.


쉐리의 숙성은 각각 산화 숙성(Crianza Oxidativa)과 효모 숙성(Crianza Biologica)으로 나뉘어지는데, 플로르가 생기지 않을 와인들은 알코올 함량을 17% ~ 22% 이상으로 주정강화를 시킵니다.

이 와인들은 효모가 생존할 수 있는 알코올 함량을 넘어섰기 때문에 효모의 활동 없이 산화 숙성만을 거치는 올로로소Oloroso 쉐리로 탄생하게 됩니다.

반면 플로르의 생성 가능성이 있는 와인들은 15% ~ 17%정도로 주정 강화를 거친 뒤 효모 숙성을 하게 됩니다.


그 중에서 아몬틸라도Amontillado라고 불리는 쉐리는 15% ~ 17%의 주정강화를 거쳐 효모 숙성으로 시작합니다.

장기간 숙성을 거치며 수분이 조금씩 증발하면서 와인이 점점 농축되고, 알코올 함량도 올라가며 생성되어있던 플로르가 자연적으로 사멸하면서 가라앉게 됩니다.

플로르가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산화 숙성을 거치게 되며 이렇게 효모 숙성과 산화 숙성을 모두 거치게된 아몬틸라도는 다른 쉐리보다 복잡하고 풍부한 향을 가지는 동시에 17% ~ 22%정도의 알코올 함량을 가진 쉐리가 됩니다.





앞서 말했듯이 과거의 쉐리와 현재의 쉐리는 많이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의 쉐리, 18세기 중반 전까지만해도 쉐리 와인을 양조할 때에는 서로 다른 해에 만들어진 와인을 같이 저장할 수 없다는 제한 규정이 있었고, 와인 제조 업자들은 10년 넘는 소송 끝에 이 제한 규정을 폐지 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 제한 규정의 폐지로 인해 쉐리 와인은 블렌딩이 가능해지고, 쉐리 와인의 품질이 극적으로 향상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갑자기 왜 과거의 쉐리 이야기를 꺼냈는가하면 바로 쉐리의 블렌딩에 관해 설명을 하기 위함입니다.





솔라레Solare는 쉐리 양조 단계 중 블렌딩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18세기 중반 이후 쉐리의 품질 향상에 큰 도움을 준 방식입니다.

오크통을 피라미드 형태로 쌓아 둔 뒤, 위로 갈 수록 새 술을 채워넣습니다.

이 중 실제 병입에 사용되는 부분인 맨 아래층의 오래된 와인을 솔레라Solera라고 부르며 한 번에 최대 1/3까지만 병입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오래된 와인을 병입하고나면 병입한 양만큼 바로 위에 있는 같은 종류의 새 와인으로 채워넣고, 또 1/3이 비어있는  방식입니다.


맨 윗층의 와인은 소브레따블라Sobretablas라고 하며 주정강화 이후 6개월을 숙성시킨 와인입니다.

그 아래로 차례대로 어린 와인을 채워넣은 세컨드 크리아데라Second Criadera와 퍼스트 크리아데라First Criadera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병입 후 비어있는 와인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채워넣었으나, 산화 등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요즘은 오크통을 서로 파이프로 연결하여 채워넣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솔라레 방식은 새로운 와인을 보충하면 바로바로 숙성된 와인을 꺼낼 수 있고, 포도의 작황에 좌우되지 않고 일정한 품질의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여러 오크통이 연결되어 있는 특성상 하나의 오크통에 문제가 생기면 연결되어 있는 모든 와인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고, 지속적으로 많은 양의 오크통이 필요하여 솔라레 방식의 관리에 비용과 인력이 많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또한 매년 같은 재료, 같은 방식의 와인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양조 방법의 시도가 어려워지기도 합니다.





위의 쉐리들은 각각 양조 단계별 생산된 대표적인 몇 가지 종류의 쉐리입니다.


페드로 히메네즈Pedro Ximenez는 솔레오 과정을 거쳐 생산된 쉐리입니다.

짙은 갈색을 띄고 있으며 진하게 농축된 과실과 견과류 향이 특징입니다.


올로로소Oloroso는 위에서 설명했듯 효모 숙성을 거치지 않고 산화 숙성만 거친 쉐리입니다.


아몬틸라도Amontillado 역시 위에서 설명했습니다. 효모 숙성을 거친 뒤 산화 숙성까지 거치게 된 쉐리입니다.


피노Fino는 효모 숙성만 거친 쉐리로 단맛이 적은 드라이 쉐리입니다. 알코올 도수도 다른 쉐리에 비해 낮은 15~17%의 알코올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노 호벤Vino Joven은 오크 숙성을 거치지 않고 바로 마시는 와인으로 쉐리의 보졸레 누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렇게 쉐리 와인의 설명까지 세계 3대 주정강화 와인인 포트, 마데이라, 그리고 쉐리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주정강화 와인, 쉐리라고 해서 모두 달콤한 와인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드라이 쉐리와 같이 또다른 매력을 가진 주정강화 와인이 있으니, 드라이 쉐리를 접할 기회가 된다면 생각과 다른 모습의 주정강화 와인을 경험해 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주정강화 와인을 끝으로 와인의 기초에 대한 이해는 모두 마쳤다고 생각됩니다.

다음편부터는 와인 이야기의 맨 처음에 말했던 대로 각 나라별 와인의 산지와 특징 등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지금까지는 초보자분들을 중심으로 작성하였으나, 이후로 작성할 나라별 와인들에 대해서는 조금 더 전문적인 지식을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 쉬운 이해를 돕고자 스페인/에스파냐 병행표기 대신 스페인으로 일괄표기하였습니다.



- Lawrence Kim





이미지 출처 : Google Image Search